감압과 싸운 100년 — 잠수병을 정복해온 역사

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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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감압이론의 역사는 곧 인간이 압력과 싸워 온 100년의 과학사다 · 대표 이미지 · Photo via Pexels

결론부터. 잠수병(감압병)은 19세기 토목 노동자들이 압축공기 속에서 일하다 쓰러지면서 처음 주목받았습니다. 1878년 프랑스 생리학자 폴 베르(Paul Bert)가 질소 기포가 원인임을 실험으로 밝혔고, 1908년 영국의 존 스콧 홀데인(John Scott Haldane)이 세계 최초의 감압표를 발표해 다이빙 사망률을 극적으로 낮췄습니다. 이후 스위스의 알베르트 뷜만(Albert Bühlmann)이 1983년 현대 감압이론의 표준인 ZHL 모델을 완성했고, 그의 알고리즘은 오늘날 사실상 모든 다이브 컴퓨터의 두뇌로 살아 있습니다. 감압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100년의 과학이 다이버의 안전을 지켜 왔습니다.

바다 속으로 내려갈수록, 그리고 다시 올라올수록, 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집니다. 수압에 의해 혈액과 조직에 녹아든 질소가 압력이 낮아지는 순간 기포로 변해 혈관을 막거나 관절을 비틀고, 심하면 마비와 사망까지 일으키는 병. 이 병을 인류가 처음 마주친 것은 스쿠버 다이빙이 등장하기 훨씬 전, 산업혁명의 현장이었습니다. 감압이론의 역사는 한 편의 탐정 소설처럼 한 세기에 걸쳐 펼쳐졌습니다.

케이슨병 — 다리 공사장에서 시작된 비극

19세기 대형 교각 공사 현장을 연상시키는 산업 역사 장면 — Photo via Pexels (pexels.com), Free to use
브루클린 브리지 케이슨 작업에서 119건의 감압병 사례와 14명의 사망이 기록됐다

1860~7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는 강 위에 거대한 교각을 세우기 위해 케이슨(caisson)이라는 압축공기 작업함이 쓰였습니다. 물과 토사가 스며들지 않도록 내부를 고압 공기로 채운 이 밀폐 공간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했고, 작업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면 상당수가 관절 통증, 마비, 심한 경우 사망에 쓰러졌습니다. 당시 이 증상은 ‘케이슨병(caisson disease)’이라 불렸습니다.

브루클린 브리지 공사(1869~1883년) 기록은 이 비극을 숫자로 보여 줍니다. 의사 앤드루 스미스(Andrew H. Smith)가 문서화한 내용에 따르면, 브루클린 측 케이슨에서만 총 119건의 감압병 사례가 기록됐으며 이 가운데 14명이 사망했습니다. 총괄 기사였던 워싱턴 로블링(Washington Roebling)도 케이슨병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이후 공사 전 기간을 창가에서 망원경으로 지휘했습니다. 당시 ‘그리시안 벤드(Grecian Bend)’라는 1870년대 유행 패션의 앞으로 굽은 자세가 통증으로 구부러진 환자들의 모습과 닮았다 해서, 이 병에는 곧 ‘더 벤즈(the bends)’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폴 베르 — “질소 기포가 원인이다” (1878)

생리학 실험실에서 연구 중인 과학자의 모습 — Photo via Pexels (pexels.com), Free to use
폴 베르는 1878년 동물 실험을 통해 감압병의 원인이 질소 기포임을 최초로 밝혔다

케이슨 노동자들이 왜 쓰러지는지, 아무도 정확한 원인을 몰랐습니다. 프랑스의 생리학자 폴 베르(Paul Bert, 1833~1886)가 바꾸기 전까지는.

1878년 베르는 총 1,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연구서 『La Pression Barométrique』를 발표했습니다. 동물 실험을 통해 그는 감압병의 원인이 혈액과 조직에 녹아 있던 질소가 감압 과정에서 기포로 변해 순환계를 막는 것임을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또한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재가압(recompression)을 제안했는데, 환자를 다시 높은 압력 환경에 넣었다가 천천히 감압하면 회복된다는 원리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고압산소 치료의 원형으로, 150년이 지난 지금도 감압병 치료의 핵심 방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베르는 같은 연구에서 고농도 산소의 독성(오늘날 ‘폴 베르 효과’로 불림)도 발견했습니다.

존 스콧 홀데인 — 최초의 감압표 (1908)

 — Photo via Pexels (pexels.com), Free to use
홀데인의 1908년 감압표 도입 이후 영국 해군의 잠수 현장 감압병 발생률이 극적으로 감소했다

베르가 원인을 밝혔다면, 이를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규칙으로 만든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생리학자 존 스콧 홀데인(John Scott Haldane, 1860~1936)이었습니다.

염소 85마리와의 실험

홀데인은 1906년부터 1908년까지 85마리의 염소를 이용한 체계적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다양한 압력·시간 조건으로 압축 후 감압하면서 증상 발현 여부를 기록했고, 인체를 5가지 조직 구획(compartment)으로 나눠 각각이 질소를 흡수하고 배출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반감기 모델(half-time model)을 정립했습니다. 이 모델을 근거로 1908년 영국 해군성(Admiralty)에 제출한 감압표는 세계 최초의 공식 다이빙 감압표로 기록됩니다.

왕립 해군의 채택과 그 결과

영국 해군이 1908년 홀데인의 표를 도입하자, 잠수 현장의 감압병 발생률이 극적으로 줄었습니다. 홀데인의 표는 영국 해군에서 1955년까지, 미국 해군에서는 1912년부터 1956년까지 사용됐습니다. 핵심 개념인 ‘단계적 감압 정지(decompression stop)’와 최대 수심·시간에 따른 표 구성은 이후 수십 년간 모든 감압 연구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뷜만과 ZHL — 현대 알고리즘의 탄생 (1960~1983)

 — Photo via Pexels (pexels.com), Free to use
뷜만의 ZHL-16 알고리즘은 오늘날 수낙토·가민·쉬어워터 등 사실상 모든 다이브컴퓨터의 두뇌로 작동한다

홀데인 이후에도 감압 과학은 계속 발전했습니다. 미 해군은 1950~60년대에 표를 여러 차례 개정했고, 로버트 워크만(Robert Workman)은 1965년 M-value(최대 허용 과포화값) 개념을 도입해 수학적 모델링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을 집대성한 인물이 스위스 취리히 대학병원의 알베르트 알로이스 뷜만(Albert Alois Bühlmann, 1923~1994)이었습니다.

취리히 고압생리학 연구소

뷜만은 1960년 프랑스·미국 해군의 지원을 받아 취리히 대학병원에 고압생리학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1964년부터는 셸(Shell) 인터내셔널 페트롤리엄의 재정 지원으로 심해 다이빙 연구를 본격화했습니다. 수십 년의 연구 끝에 그는 1983년 ZHL-12(12 구획) 모델을 처음 발표했고, 1986년에는 이를 발전시킨 ZHL-16을 공개했습니다. 16개의 조직 구획을 정의하고 각 구획의 질소 반감기(half-time)와 최대 허용 과포화값을 정량화한 이 모델은, 수심에 따른 정확한 감압 정지 시간과 안전 한계를 계산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다이브 컴퓨터의 두뇌가 되다

뷜만의 ZHL-16 알고리즘은 이후 두 갈래로 발전했습니다. 인쇄형 감압표용 ZHL-16B와 실시간 계산용 ZHL-16C. 오늘날 수운토(Suunto), 쉬어워터(Shearwater), 가민(Garmin), 마레스(Mares), 스쿠바프로(Scubapro) 등 사실상 모든 다이브 컴퓨터가 ZHL-16 계열 알고리즘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홀데인의 표가 책상 위에 있었다면, 뷜만의 알고리즘은 손목 위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도플러와 기포 모델 — 눈에 보이지 않는 기포를 보다

수중에서 기포를 내뿜으며 상승하는 다이버 — Photo via Pexels (pexels.com), Free to use
1970년 도플러 초음파 연구는 표준 감압표를 따른 다이버의 혈관에서도 기포가 검출됨을 밝혔다

홀데인과 뷜만의 모델은 모두 조직 내 질소 과포화를 기준으로 감압을 계산하는 용해 기체 모델(dissolved gas model)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 과학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970년 미국의 메릴 스펜서(Merrill P. Spencer) 박사는 도플러 초음파 기포 탐지기를 이용해 다이버의 혈관 속 가스 기포를 처음으로 비침습적으로 측정했습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시 표준 감압표를 철저히 따른 다이버들 중 상당수에서도 혈관 속 기포가 검출됐습니다. 즉, 기존 모델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상황에서도 실제로는 기포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발견은 ‘증상이 없어도 기포는 생긴다’는 개념을 낳았고, 감압 이론이 단순 증상 기반에서 기포 역학(bubble mechanics)으로 진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 이후 RGBM(Reduced Gradient Bubble Model), VPM(Varying Permeability Model) 등 기포 중심 알고리즘이 개발됐습니다.

수치로 보는 감압이론 100년

항목수치·내용출처
브루클린 브리지 케이슨병 사례총 119건 기록, 14명 사망 (1869~1883년)PubMed / Caisson disease during the construction of the Eads and Brooklyn Bridges
폴 베르의 연구서 발표1878년 · 『La Pression Barométrique』 약 1,000페이지 · 질소 기포설 및 재가압 치료법 최초 기술PMC / Discovery of caisson disease, 2021
홀데인 실험 규모1906~1908년 · 염소 85마리 대상 체계적 압축-감압 실험CMAS / Haldane 1908 Fact Sheet
홀데인 표 사용 기간영국 해군 1908~1955년(47년) · 미국 해군 1912~1956년(44년) 사용Scuba Diver Life / Pioneers of Diving: Haldane
뷜만 ZHL-16 발표1986년 · 16개 조직 구획 · 현재 전 세계 다이브 컴퓨터 표준 알고리즘Wikipedia / Bühlmann decompression algorithm
첫 상업용 다이브 컴퓨터1983년 오르카 엣지(Orca Edge) 출시 · 같은 해 데코브레인(Deco Brain) 발매DIVE Magazine / History of the dive computer

오올블루의 시선 — 모든 안전 정지 뒤에는 이름이 있다

다이브 컴퓨터가 “3분, 5미터”라고 알릴 때, 그 숫자 뒤에는 수십 년의 실험과 수많은 실패가 쌓여 있습니다. 케이슨 작업자들이 쓰러졌고, 베르가 실험실에서 밝혔으며, 홀데인이 염소를 데리고 압력과 싸웠고, 뷜만이 취리히 연구소에서 수학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다이버들이 도플러 프로브 앞에 앉아 혈관 속 기포를 측정당했습니다.

오올블루는 다이빙을 기록과 탐험의 여정으로 봅니다. 그 여정에서 안전 정지는 번거로운 절차가 아니라, 100년의 과학이 우리에게 건네는 유산입니다. 감압이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기포 모델은 계속 정교해지고, 연구는 지금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 천천히 올라와야 한다. 그것이 베르가 1878년에 남긴 첫 번째 교훈이자, 가장 오래된 진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감압병이 ‘더 벤즈(the bends)’라 불리게 된 이유가 뭔가요?

1870년대 유행한 여성 패션 스타일 ‘그리시안 벤드(Grecian Bend)’가 앞으로 굽은 자세를 만들었는데, 케이슨 작업자들이 통증으로 구부러진 모습이 이와 닮았다 해서 ‘the bends’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 표현은 지금도 비공식 명칭으로 널리 쓰입니다.

홀데인의 1908년 감압표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요?

기본 원리인 단계적 감압 정지 개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다만 구체적인 수치는 이후 수십 년간의 연구로 개선됐습니다. 미국·영국 해군 모두 1950년대 중반 홀데인 표를 폐기하고 새 표로 교체했으며, 오늘날 다이브 컴퓨터는 뷜만의 ZHL-16C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실시간 계산합니다.

다이브 컴퓨터가 있으면 감압병에 걸릴 위험이 없나요?

아닙니다. 다이브 컴퓨터는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다이버에게 안전한 범위를 계산해 줄 뿐, 개인별 신체 조건·탈수 상태·피로·수온에 따라 위험은 달라집니다. 도플러 연구가 보여줬듯 컴퓨터가 ‘안전’으로 판단한 다이빙 후에도 혈관 속 기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안전 정지를 반드시 지키고, 다이빙 후 극격한 운동·고도 이동을 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뷜만 알고리즘 말고 다른 감압 알고리즘도 있나요?

있습니다. RGBM(Reduced Gradient Bubble Model), VPM(Varying Permeability Model), DCIEM 모델 등이 기포 역학을 중심으로 개발됐습니다. 일부 텍 다이브 컴퓨터는 이러한 기포 모델을 채택하거나 ZHL과 병행 사용합니다. 어떤 알고리즘을 쓰든 핵심은 같습니다 — 천천히, 계획적으로 올라오는 것.

바다의 역사를 기록하는 여정

오올블루는 다이빙을 탐험이자 기억의 방식으로 봅니다. 당신의 다음 수중 이야기를 함께 시작하세요.

참고 자료

  • Acott C. (2021). Discovery of caisson disease: a dive into the history of decompression sickness. PMC / NCBI. pmc.ncbi.nlm.nih.gov
  • PubMed. Caisson disease during the construction of the Eads and Brooklyn Bridges: A review (2004). pubmed.ncbi.nlm.nih.gov
  • CMAS. Haldane 1908 — Fact Sheet. cmas.org
  • Scuba Diver Life. Pioneers of Diving: John Scott Haldane. scubadiverlife.com
  • Wikipedia. Bühlmann decompression algorithm. en.wikipedia.org
  • CMAS. Bühlmann ZH-L — Fact Sheet. cmas.org
  • DIVE Magazine. The history of the dive computer. divemagazine.com
  • InDepth Mag. O’Dive: Assessing the World’s First Personal Deco Safety Tool. indepthmag.com

※ 본 글은 정보·교양 목적의 콘텐츠입니다. 실제 다이빙은 반드시 해당 교육기관의 자격 과정을 이수하고, 전문 강사·현지 운영자의 안내 아래 진행해야 합니다. 개인별 신체 조건·기저질환에 따라 감압 위험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잠수 전 전문의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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