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 요약

결론부터. 1900년 봄, 그리스 스펀지 다이버들이 폭풍을 피해 정박한 안티키테라 섬 앞바다에서 수심 약 45m의 해저에 가라앉은 로마 시대 선박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인양한 청동 덩어리 하나가 2,000년 넘게 만들어진 적 없는 수준의 천문 계산 장치—안티키테라 기계—였습니다. 이 발견은 수중고고학이라는 학문이 태어나기 수십 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잠수부가 역사를 건진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인양 과정에서 잠수병으로 다이버 1명이 숨지고 2명이 마비됐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현재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82개의 청동 조각으로 이루어진 이 장치는 지금도 완전히 해독되지 않은 채 역사상 가장 복잡한 고대 기계로 남아 있습니다.
바다는 가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내어줍니다. 1900년 봄, 에게 해를 건너던 스펀지 다이버 일행은 폭풍 한 가운데서 안티키테라 섬 근처에 배를 세웠습니다.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바다에 뛰어들었고, 수심 약 45m 해저에서 대리석 팔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인류 지식사를 바꾼 발굴의 첫 장면이었습니다.
폭풍이 멈춘 자리 — 1900년의 발견

1900년 봄, 시미(Symi) 섬 출신의 스펀지 어부들을 태운 배가 리비아 해안을 향해 항해하던 중 에게 해 남서쪽에서 강한 폭풍과 맞닥뜨렸습니다. 선장 디미트리오스 콘토스(Dimitrios Kondos)는 안티키테라 섬 근처에 닻을 내리고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수부들은 그 틈을 이용해 스펀지를 채취하기로 했습니다.
엘리아스 스타디아티스(Elias Stadiatis)가 처음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그들이 사용한 장비는 표준잠수복(Standard Diving Dress)—납 장화와 헬멧이 달린 무거운 천 재질 잠수복—이었습니다. 유연성이 거의 없는 이 장비로 수심 45m까지 내려가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일이었지만, 더 깊이 들어갈수록 스펀지가 많다는 것은 잠수부들 사이에서 상식이었습니다. 수면으로 올라온 스타디아티스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래에 말들이 있습니다. 말들과 사람들이.” 선장 콘토스는 직접 내려가 확인했고, 청동 팔 하나를 들고 올라왔습니다.
같은 해 11월, 콘토스 선장은 그리스 당국에 이 사실을 신고했습니다. 그리스 해군이 지원에 나섰고, 이듬해인 1901년까지 약 10개월에 걸친 인양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수중 고고학적 인양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이름조차 없었습니다.
잠수병의 대가 — 표준잠수복 다이버들의 희생

1901년의 인양 작업은 목숨을 담보로 한 작업이었습니다. 수심 45~55m 구간에서 표준잠수복으로 작업하는 것은 현대적 관점에서도 극히 위험합니다. 당시에는 감압 이론이 막 논의되기 시작한 수준이었고, 정해진 감압 절차 같은 것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감압병이란 무엇인가
수중에서 고압 환경에 노출된 인체는 혈액과 조직에 다량의 질소를 흡수합니다. 수면으로 너무 빠르게 상승하면 흡수됐던 질소가 기포를 형성하고, 이 기포가 관절·척수·뇌 혈관을 막아 심한 통증과 마비, 심하면 사망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감압병(Decompression Sickness, DCS), 혹은 다이버들이 “벤즈(the bends)”이라 부르는 증상입니다. 현대 다이버는 잠수 컴퓨터와 감압표를 이용해 상승 속도와 정지 시간을 정밀하게 계산하지만, 1901년의 스펀지 다이버들에게 그런 지식은 없었습니다.
안티키테라 인양 작업에서 게오르기오스 크리티코스(Georgios Kritikos)라는 다이버가 감압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두 명의 동료는 하반신 마비 등의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습니다. 이 희생이 너무 컸기 때문에 1901년 인양은 결국 조기에 중단됐습니다. 다이버 한 명의 죽음과 두 명의 장애—이것이 고대 기계의 발굴을 위해 20세기 초 인간이 치른 대가였습니다.
무엇이 인양됐나
그 위험을 감수하며 끌어올린 유물의 목록은 압도적입니다. 대리석 조각상 36점 이상—철학자상, 안티키테라의 청년(Ephebe of Antikythera), 헤라클레스 두상, 말 조각상 3점, 디오메데스·헤르메스·아폴로 상—그리고 청동 조각상 여럿, 유리공예품, 도기류가 인양됐습니다. 그리고 초록빛 청동 덩어리처럼 보이는 물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것이 안티키테라 기계였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 — 1,400년을 앞서간 장치

처음에는 그저 또 하나의 부식된 청동 덩어리로 보였습니다. 인양 작업이 끝나고 박물관으로 옮겨진 후인 1902년, 고고학자 스피리돈 스타이스(Spyridon Stais)가 조각 속에서 톱니바퀴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단단히 뭉쳐진 금속 뭉치가 아니라, 수십 개의 정밀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기계장치였습니다.
이후 100년 이상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들은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합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약 기원전 150~6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최소 30개 이상의 맞물린 청동 기어로 구성돼 있습니다. 연구자에 따라 총 기어 수 추정치가 다르지만, 잘 알려진 것 중 하나가 223개의 이빨을 가진 사로스 기어입니다. 이 기어 하나로 기계는 일식과 월식이 반복되는 223개월(약 18.5년)의 사로스 주기를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앞면 다이얼은 이집트력과 그리스 황도대를 동시에 보여주고, 뒷면 상단 나선형 다이얼은 235개월(약 19년)의 메톤 주기, 하단은 사로스 주기와 4년의 올림픽·판아테나이아 경기 주기를 추적했습니다. 한 장치 안에 태양·달의 위치, 달의 위상, 행성 위치(최근 연구에서 다섯 행성 추적 가능성 제기), 일식·월식 예측, 올림픽 주기가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2021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팀이 발표한 Scientific Reports 논문은 이 기계의 앞면 구조를 완전 복원하는 데 가장 근접한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비교할 만한 기계 장치가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약 1,400년 후 중세 유럽의 천문 시계가 등장할 때입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현재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82개 조각으로 분리 보관·전시되며, 2013년부터 전용 ‘안티키테라 난파선 전시실’에서 모든 조각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수치로 보는 안티키테라 발견
| 항목 | 수치·내용 | 출처 |
|---|---|---|
| 발견 연도 | 1900년 봄, 스펀지 다이버 엘리아스 스타디아티스 | WHOI / National Geographic |
| 난파선 수심 | 약 45~55m (주요 유물 분포 구간) | WHOI / Ancient Origins |
| 잠수병 피해 | 사망 1명(게오르기오스 크리티코스), 마비 2명 | SpaceDaily / Ancient Origins |
| 인양 유물 | 대리석 조각상 36점 이상, 청동상 다수, 안티키테라 기계 |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Athens |
| 안티키테라 기계 제작 추정 시기 | 기원전 약 150~60년 (2세기~1세기 BCE) | Nature / UCL 2021 |
| 기계 현존 조각 수 | 82개 청동 조각,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 |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Athens |
| 쿠스토 재조사 | 1976년, 칼립소호, 약 300점 추가 유물(금 장신구·골격 포함) | WHOI / Splashtravels |
쿠스토의 재방문과 현대 발굴

안티키테라 난파선은 1901년 인양 이후 반세기 넘게 거의 잊혀졌습니다. 그것을 다시 세상의 주목으로 끌어낸 것은 자크이브 쿠스토(Jacques-Yves Cousteau)였습니다. 쿠스토는 1953년 처음 이 지역을 방문한 후 1976년 조사선 칼립소(Calypso)를 이끌고 돌아왔습니다. 〈로마의 전리품을 찾아서(Diving for Roman Plunder)〉라는 TV 다큐멘터리 제작을 겸한 이 탐사에서 쿠스토 팀은 난파선의 퇴적층 일부를 파내어 약 300점의 추가 유물을 수습했습니다. 금 장신구, 청동 소상, 그리고 승객과 선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골격 유해가 포함됐습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2012년부터는 그리스 문화부와 우즈홀 해양연구소(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WHOI)가 공동으로 ‘안티키테라 귀환(Return to Antikythera)’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현대 수중고고학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포화잠수 없이 수심 70m 이상까지 작업할 수 있는 드라이수트와 리브리더(closed-circuit rebreather)를 갖춘 기술 다이버들이 투입됐고, 3D 포토그래메트리로 난파 현장 전체의 지형 지도가 만들어졌습니다.
2016년에는 이 프로젝트의 가장 극적인 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8월 31일, 팀은 수중에서 인간 두개골과 턱뼈, 사지 장골, 갈비뼈를 포함한 골격을 발굴했습니다. 고대 난파선에서 수습된 인간 유해로는 DNA 분석이 가능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측두골 내부의 추체골—DNA 보존률이 높기로 알려진 부위—이 포함됐으며, 분석 결과 20대 초반 남성으로 추정됐습니다. 이 유해에서 추출한 DNA는 2,000년 전 지중해 항해자의 유전적 배경을 밝혀줄 단서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오올블루의 시선 — 잠수부가 먼저 역사를 건졌다
수중고고학은 학문으로서 1960년대에야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60년 전, 폭풍을 피해 닻을 내린 스펀지 다이버들이 해저에서 역사를 건져 올렸습니다. 그들은 고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훈련된 잠수부이기는 했지만, 잠수병의 위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수심 50m를 오르내렸습니다. 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두 명이 평생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됐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를 생각할 때, 오올블루는 그 톱니바퀴의 정교함만큼이나 그것을 수면으로 끌어올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게오르기오스 크리티코스라는 이름의 다이버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펀지를 채취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의 죽음 덕분에 세상은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컴퓨터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안티키테라 기계를 볼 때 이 이름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올블루는 다이빙을 탐험이자 기억의 행위로 바라봅니다. 바다는 기억합니다—우리가 무엇을 흘리고 떠났는지를. 좋은 다이버는 그 기억에 접근하되, 훼손하지 않습니다. 만지지 않고, 가져가지 않으며, 기록하고 기억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안티키테라 기계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안티키테라 기계의 82개 조각 전부는 그리스 아테네의 국립고고학박물관(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of Athens)에 소장·전시되어 있습니다. 2013년 이후 전용 ‘안티키테라 난파선 전시실’에서 모든 조각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누구든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어떻게 작동했나요?
손으로 옆면의 핸들을 돌리면 내부의 청동 기어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앞뒤 다이얼에 달의 위상, 태양과 달의 황도 위치, 일식과 월식의 예측 날짜, 올림픽 경기 주기 등이 표시됐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로스 기어(223개 이빨)는 일식과 월식이 동일한 순서로 반복되는 18.5년 주기를 계산하기 위한 것입니다. 2021년 UCL 연구팀은 이 기계가 다섯 행성의 움직임까지 추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복원 모델을 발표했습니다.
안티키테라 난파선에 왜 그렇게 많은 유물이 실려 있었나요?
난파선은 기원전 1세기경—대략 기원전 65년 전후—로마 시대의 대형 화물선으로 추정됩니다. 화물 구성을 보면 고급 조각상, 도기, 장신구, 그리고 정교한 과학 기기가 함께 실려 있어 단순한 상선이 아니라 상류 계층의 수집품이나 전쟁 전리품을 운반하는 특수 화물선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로마의 술라(Sulla)가 그리스를 약탈한 기원전 86년 이후 로마로 향하던 선박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안티키테라 난파선에서 유물이 발견되나요?
네. 2012년부터 시작된 ‘안티키테라 귀환(Return to Antikythera)’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입니다. 2016년의 인간 골격 발견이 가장 극적인 사례지만, 그 이후로도 청동 조각, 리드 앵커, 선체 구조물 등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현장은 그리스 법에 따라 보호되며, 허가 없는 잠수와 유물 채취는 엄격히 금지됩니다.
바다가 기억하는 것들을 함께 찾아서
오올블루는 다이빙을 탐험이자 기억의 여정으로 봅니다. 안티키테라의 다이버들처럼, 당신의 수중 이야기를 지금 시작하세요.
참고 자료
-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Antikythera Shipwreck. whoi.edu
- National Geographic. The ‘Dial of Destiny’ is real — and was found in an ancient shipwreck. nationalgeographic.com
- Freeth, T. et al. (2021). A Model of the Cosmos in the ancient Greek Antikythera Mechanism. Scientific Reports. nature.com
- World History Encyclopedia. Antikythera Mechanism. worldhistory.org
-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Ancient Skeleton Discovered on Antikythera Shipwreck. whoi.edu
- SpaceDaily. Georgios Kritikos died of decompression sickness during the ten-month salvage. spacedaily.com
- Return to Antikythera Project. antikythera.org.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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